지금은 단종된 HP의 KU-1156 키보드를 구매했습니다. 워낙 출시된 지 오래된 제품이어서 구매할 때도 상태가 나쁜 게 오면 어쩌지 걱정했었는데 의외로 멀쩡한 제품이 왔네요.
제가 이 제품을 구매한 이유는 단순히 제조사 때문이었습니다. 예전 멤브레인 키보드를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치코니(Chicony) 사의 제품입니다.
치코니는 원래 태국 회사인데, 제조는 중국에서 하고 있더군요. 수집품으로 가지고 있던 컴팩 KB-9963이라는 키보드가 치코니 제품이고 특유의 부드럽고 쑥 들어가는 멤브레인 느낌이 좋아서 치코니 제품을 꼭 다시 구매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HP KU-1156 멤브레인 키보드 구입 후기
원래 HP KU-1156은 현재 단종된 제품입니다. 출시 시기를 생각해 보면 단종되었다는 게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저처럼 특별하게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 덕분인지 아직 재고가 있는 업체가 있더군요.
적합성평가 인증번호를 보면 KCC-REM-E8H-KU-1156으로 되어 있는데, 최초 등록 인증연월일이 2012년 2월 24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0년 전이죠.
눈여겨보다가 문의 글을 잘 살펴보고 구매를 결정했습니다. 중고가 아니어서 신품 수준을 기대하기는 했는데 연식이 있어서 사실 불안했네요. 배송받아 보니 완전 새 제품이 와서 다행이었습니다.
박스는 이중으로 포장되어 왔는데 뽁뽁이가 안 감싸져 있고 그냥 박스 안에 박스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서리가 터지는 참사가..ㅠㅠ
아무튼 제품에 이상이 없으면 됐습니다. 보관은 다른 박스에 하면 되니까요.
박스 왼쪽 위에 제품 정보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제조사는 Chicony Electronics Co., Ltd.이고 제조국은 중국입니다. 모델 넘버는 KU-1156으로 되어 있네요.
지금 HP 브랜드로 나오는 키보드는 큐센에서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치코니 제조품은 현재 국내에서 정상 유통되지 않고 있죠.
원래 이 제품은 키스킨이 기본 포함인데 판매처에서는 키스킨 없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왜 이런 건지 모르겠네요. 받은 제품은 비닐 속포장이 되어 있고 받침대를 사용 중에는 키보드 손상에 유의하라는 안내문이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상단에 HP 로고 부분입니다. 고급지게 딱 가운데 자리잡고 있네요. 상판 재질도 싸 보이지 않게 질감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려 Fn키 조합으로 멀티미디어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옛날 키보드임을 생각할 때는 아주 획기적이네요.
아쉽게도 Space키의 길이가 짧습니다. 저는 그렇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데, 그래도 짧은 것보다는 긴 게 낫죠. 이게 다 왼쪽에 한자 키, 오른쪽에 한영 키가 들어가서 한글버전에는 키가 2개나 추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랫면 모습입니다. 위쪽에 받침대 2개가 있고, 고무 받침대도 성실하게 네 군데 붙어 있네요.
고무받침대는 가운데 부분이 살짝 올라와 있어서 바닥이 다소 평평하지 않아도 잘 지지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작은 부분에서도 상당히 신경을 쓴 게 눈에 보이네요.
받침대는 특이하게 옆으로 펼쳐집니다. 이런 제품들이 몇몇 있는데 안 움직이게 하는 데는 더 효과적이고, 힘을 잘못 누르면 부러질 염려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안내문이 들어있던 거구요.
후면의 제품 라벨입니다. 제조사, 제조국, 모델명 등이 적혀 있습니다.
인디케이터는 모두 푸른색입니다. 녹색이면 연식 인증을 하는 거겠는데 파란색이어서 오히려 세련되어 보입니다.
자세한 스펙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아서 직접 수치는 재 보았습니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460*163*22mm 정도 됩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고 자로 대충 재어 본 수치이니 참고만 해 주세요.
키캡은 당연히 ABS 재질이고 아주 얇은 편입니다. 전형적인 저가형 멤브레인 키보드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지만, 한글 폰트나 인쇄된 퀄리티가 아주 뛰어난 편입니다. 시인성이 좋은 키캡 인쇄네요.
레이저 인쇄되어 있고 폰트 컬러는 치코니 특유의 아주 미세한 아이보리 컬러가 가미되어 있습니다. 그냥 보면 쨍한 흰색보다 고급져 보입니다.
키를 뽑아 보니 원통형 기둥입니다. 사각형보다 누를 때 더 부드럽게 눌려지겠죠. 안쪽에 보이는 멤브레인은 일체형으로 보입니다. 키캡에 2017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니 제조년도가 2017년이 아닌가 싶네요. 안쪽을 뜯어보면 알겠지만 아직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디자인적인 특징이라면 전체 모양 중 테두리 부분이 살짝 각지지 않게 둥글려져 있다는 점, 그리고 상하판 사이에 은색으로 중간 보강판 같은 디자인을 한 게 보입니다. 무게는 재어 보니까 대략 900g쯤 되었습니다. 이런 제품들 보통 보면 날아가는 가벼운 무게로 만들어지곤 하는데 묵직한 게 흔들리지 않고 좋습니다.
스탭스컬처가 적용되어 있지는 않지만 생각보다는 타이핑이 편합니다. 옆에서 보면 키캡이 누워 있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이런 디자인 때문에 받침대를 올리지 않으면 칠 때 키보드 위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냥 옆에서 보면 위나 아래나 똑같은 높이인 듯한데 쳐 보면 손목 꺾임이 덜하네요. 그래서 편한 것 같습니다.
키캡 흔들림이 적은 편이지만, 고급 기계식처럼 착 달라붙는 느낌은 아닙니다. 타이핑할 때 찰찰 거리는 소음은 발생합니다. 저소음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밤에 타이핑할 정도는 됩니다. 그만큼 소음도 적은 편이고 키스킨이 있었으면 더 소리가 안 났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스테빌이 있는 키들도 생각보다 소음이 적습니다. 아주 잘 만들어져 있네요.
키압은 처음에는 아주 낮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쳐 보니까 적축과 흑축 중간쯤 되는 것 같습니다. 대신에 눌렀을 때 스트로크가 그렇게 깊지 않고 구분감이 덜한 멤브레인이어서 좀 더 수월하게 타이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구분감이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멤브레인도 눌렀을 때 한 번 누르고 끝에 닿는 순간 두 번째 걸림이 생기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누르면 '둑!' 이러지 않고 '두둑!' 이렇게 연결 되면 별로더군요. 이게 개인 취향이 좀 있어서 오히려 구분감이 있는 걸 좋아하는 분도 있죠.
무접점 50g보다는 키압이 높습니다. 이 부분이 좀 아쉬운데요, 예전 기억으로 치코니는 아주 부드럽고 키압이 낮은 키보드를 만드는 제조사로 알고 있었는데 키압이 생각보다는 높네요. 그래도 여러 멤브 제조사들을 비교해 보면 낮은 편에 속하기는 합니다. 요즘 멤브레인은 시트를 저가형을 사용하는지 대부분 키압이 아주 높게 세팅 되어 있더군요.
보유하고 있는 같은 치코니 제조의 컴팩 KB-9963보다는 아주 약간 더 키압이 높습니다. 이건 키캡 높이 때문일 수도 있는데, KU-1156이 키캡 높이가 더 낮은 편입니다.
그래도 키감이 고급스럽고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아서 이 가격대에서는 느껴 볼 수 없는 키보드라고 생각되네요. 개인적으로 지금 유통되는 dt-35보다는 훨씬 완성도가 높은 제품입니다. 키압이나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dt-45가 더 가깝습니다. 그 정도를 기대하면 KU-1156이 퀄리티가 좋다고 생각이 들 겁니다.
지금은 모든 원재료 값이 올라서 키보드 쪽도 아주 저가형 아니면 고급형 제품들이 인기가 있는 듯합니다. 특히 멤브레인 제품들은 대부분 저가형만 나오기 때문에 고급형 제품을 만나기 어려운데, HP KU-1156은 저렴하면서도 퀄리티 측면에서는 고급감을 놓지 않고 있어서 좋은 가성비 제품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전 가격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구매한 가격은 배송비 포함해서 15,500원이었습니다. 검색해 보니 중고나라에서 아주 저렴하게 판매했던 적도 있더군요. 그래도 지금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면 구매하는 게 더 이득입니다.
처음 딱 봤을 때 이건 저가형, 이런 생각보다는 '어라? 꽤 잘 만들어졌네?' 이런 느낌이 더 강합니다. 저처럼 멤브레인 키보드 좋아하는 분, 부드러운 키감의 키보드, 낮은 키압의 키보드를 찾는 분이라면 HP KU-1156 강추드립니다.